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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키와

목조건축의 지붕재로써 가장 기본적으로 사용되고, 많은 수량을 차지하고 있는 수키와〔圓瓦, 夫瓦]와 암키와〔平瓦, 女瓦]는 지붕에 씌워 기왓등과 기왓골을 형성하여 눈과 빗물에 의한 누수를 방지한다. 원본 보유·제공처: 경주대학교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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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설명

<정의> 두 암키와 사이를 어울러 엎어 이는 기와. <발달과정/역사> 우리나라에서는 건물의 지붕재로 삼국시대(三國時代)부터 기와가 사용되기 시작하여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고대(古代)로부터 기와를 이은 기와집은 부(富)의 상징이었으며 권력(權力)의 상징이기도 했다. 목조건축의 지붕재로써 가장 기본적으로 사용되고, 많은 수량을 차지하고 있는 수키와〔圓瓦, 夫瓦]와 암키와〔平瓦, 女瓦]는 지붕에 씌워 기왓등과 기왓골을 형성하여 눈과 빗물에 의한 누수를 방지한다. 삼국시대에서 고려시대(高麗時代)까지 기왓등을 이루는 수키와는 크게 두 종류로 나누어지는데 그것은 미구기와와 토수기와이다. 이 수키와의 철면(凸面 : 배면이라고도 한다)에서는 타날문양(打捺文樣 : 등문양이라고도 한다)이 확인되는데 시대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이 타날문양은 고판(叩板 : 타날판)의 두드림에 의해 남는 것으로 삼국시대의 것은 주로 승문(繩文), 선문(線文), 격자문(格字文)이고, 고려시대에는 주로 어골문(魚骨文), 조선시대(朝鮮時代)는 청해파문(靑海波文)이 유행하였다. 간혹 기와의 철면에 절이름, 제작기호, 제작연대, 사용처 등이 압인(押印)되거나 새겨져 있어 고대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주목을 받는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여기에서 소개하는 수키와는 광단면(廣段面)의 일부와 한쪽 측면(側面)이 부분적으로 결손(缺損)된 토수기와로 파손복원품이다. 태토는 1mm내외의 세사립을 첨가한 것이다. 외면(外面)의 색조는 회갈색이다. 요면(凹面)에서는 포목흔(布目痕)이 확인되며 협단부 쪽에서는 삼베가 겹친흔적이 보인다. 철면(凸面)에서는 선문(線文) 중판(中板)의 타날문양(打捺文樣)이 타날되어 있다. 광단부 쪽은 횡방향 마무리질로 타날문양이 지워졌다. 측면에서는 와도흔(瓦刀痕)이 확인되는데 한쪽은 안쪽에 다른쪽은 바깥쪽에서 와도흔이 보인다. 광단면에서는 포목흔과 1mm 이내의 세사립이 관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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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기준
2016-08-31
공공데이터포털 페이지 수정
2025-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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