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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장방형 또는 원형으로 부처에게 공양하는 연꽃을 심었던 용기
<일반적인 형태 및 특징>
한국에서는 일찍부터 연지가 조성되었다. 익산 미륵사지와 부여 정림사지에서 발견된 연지터가 좋은 예로, 특히 미륵사지의 연지는 넓이가 약 5,500평이나 되는 거대한 규모였고, 정림사지에서는 동쪽과 서쪽 두 곳의 연지터가 발견되었다. 지금은 메워지고 없지만 경주 불국사에도 연지가 있었고, 해미 개심사(開心寺) 등의 몇몇 사찰에는 아직도 연지가 남아 있다. 연지를 축조하지 못할 경우에는 법당 앞에 돌로 모형을 만들어 놓기도 하였다. 이것이 석조이다. 석조는 장방형 또는 원형의 돌로 만든 작은 연못으로 부처에게 공양하는 연꽃을 심었던 용기이다. 석련지(石蓮池)라고도 한다.
이러한 석조가운데 법주사의 석련지는 국보 제64호로 이곳에 물을 담아 연꽃을 띄워 두었다고 한다. 8각의 지대석(地臺石) 위에 3단의 굄을 만들고 다시 복련(覆蓮:꽃부리가 아래로 향한 연꽃) 1층을 첨가하고 그 위에 구름무늬가 장식된 중간석을 끼워서 연지(蓮池)를 받치고 있다. 연지 표면에는 밑으로 얕게 소(素)무늬의 연판(蓮瓣)을 돌리고 위쪽에는 웅대한 복판연화(複瓣蓮華)가 있으며, 판내(瓣內)에는 보상화(寶相花)무늬가 조식(彫飾)되었다. 내부는 패여져 있어 물을 담게 되었고 구연(口緣) 둘레에는 난간을 둘렀다. 반개(半開)한 연꽃의 형상을 본뜬 연지의 형태는 외부의 곡선과 함께 부드럽고 아름답다.
8세기경에 제작된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전체적으로 비례가 우수하며 표면의 장식이 화려하고 세련되었다. 특히 표면 조각은 연꽃을 상징하여 연지의 용도에 알맞게 되어 있다. 받침 위에 놓여 있는 석연지는 현재 갈라져 있으므로 철제 꺾쇠로 연결해 놓았다.
이외에도 공주 대통사지와 부여 관북리·가탑리·동남리 출토품이 있다. 대통사지 석조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짧고 가는 간석은 약간 불안해 보이나, 복련으로 아름답게 장식하고, 그 위에 발우형(鉢盂形)이 놓였다. 부여 동남리 석조는 자연 굴곡을 살린 고식이며, 가탑리 석조는 외형을 연꽃이 피어나는 모습, 관북리 석조는 원형대좌에 발우형으로 구연부의 일부가 파손되고, 한쪽에 출수구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백제적인 부드러움과 자연스러움이 잘 표출되어 있다.
본 유물은 조선시대의 석조로 원형의 형태를 띠고 있다. 석조의 구연둘레에는 연꽃 무늬가 둘려져 있다.
@ko
김원룡, 안휘준, 『한국미술사』, 서울대 출판부, 2000.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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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기준
- 2016-08-31
- 공공데이터포털 페이지 수정
- 2025-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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