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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잡이가 달린 이와 같은 잔은 신라와 가야에서 주로 만들어지던 토기이다. 신라토기란 삼국시대 신라에서 만들어 사용하던 토기를 말한다. 지역적으로 경주를 중심으로 한 경상도 지방에 분포하고 있으나, 신라의 영토범위가 확장되면서 포괄하는 범위가 넓어졌다. 하지만 좁은 의미로 사용할 때는 신라시대 경상도 지방에서 만들어진 회색의 광택이 없는 토기를 지칭하기도 한다. 이 토기는 대부분 흑색 ·흑회색 ·회청색 등의 색조를 띠며 흡수성이 없고 표면이 단단하여 때리면 금속성이 나는데, 이는 밀폐된 가마에서 바탕흙[胎土] 속의 철분이 환원염(還元焰)으로 구워진 결과이다. 형태상으로는 목항아리[長頸壺]와 굽다리접시[高杯]가 기본이지만 이후 다양한 변형들이 등장한다. 이들 토기는 원삼국시대(김해시대) 말기인 250-350년에 와질토기(瓦質土器)에서 발전한 것으로 추정되며, 이 단계에서 김해 부원동 패총에 잘 나타나는 ‘부원동기(府院洞期)’를 거쳐 신라토기가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와질토기는 낙동강을 중심으로 소백산맥 이남에서 거의 비슷한 양상으로 발전했는데, 낙동강 동쪽에서는 신라토기가, 서쪽에서는 가야토기가 각각 발전하였다. 신라토기와 가야토기는 같은 회색의 광택이 없는 토기로서 넓은 의미에서는 모두 신라토기로 부르지만, 두 토기는 형태상 몇 가지 면에서 구분이 된다. 즉 가야의 굽다리접시는 굽구멍[透窓]이 위아래 한 줄로 배치되는 경우가 많은 데 비해 신라토기의 굽구멍은 위아래가 교대로 배치된 경우가 많으며, 몸통의 깊이가 깊은 편이다. 표면에 새긴 무늬는 신라토기 쪽이 보다 다양한 편이며, 굽다리접시에 딸린 뚜껑의 꼭지 형태도 차이가 있다. 목항아리의 경우 어깨 몸통이 이어지는 부분이 가야토기는 매끄럽게 곡선으로 연결되는 데 비하여 신라토기는 단이 져 있고, 바닥에 대각(臺脚)이 붙어 있는 점도 다르다. 이 토기의 변천에 대해서는 전기 ·중기 ·후기 ·통일신라기 등으로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다. 전기는 350-450년으로 경주 황남동 109호분 ·110호분 ·98호분, 황오동 14호분 등에서 출토된 토기들이 대표적이며, 경주 이외에는 부산 ·안동 ·예천 ·영일 등에서도 일부 출토되었다. 이 시기에는 신라시대 대표적 고분양식인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에 많은 양의 토기가 부장되어 신라토기의 전형을 이루고 있다. 김해식 적갈색의 창이 없는 굽다리접시가 소멸하고, 창과 덮개가 있는 굽다리접시 ·파배(把杯) ·기대(器臺) 등 신라토기의 중요 형태가 이 시기에 모두 등장한다. 중기는 500년을 전후한 1세기 동안으로 서봉총(瑞鳳塚) ·천마총(天馬塚) ·금관총(金冠塚) ·금령총(金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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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기준
- 2016-08-31
- 공공데이터포털 페이지 수정
- 2025-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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