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소장자료 아카이브

산수도

동양에서 산수화란 자연의 표현인 동시에 인간이 자연에 대해 지니고 있는 노장사상에 바탕을 둔 자연관을 토대로 하여 발전된 것이다. 시대·제작시기: 조선중기. 원본 보유·제공처: 경희대학교 중앙박물관.

원본의 내용을 읽다

자료 설명

<정의> 산과 강 등 자연을 소재로 한 한국화 <발달과정 및 역사> 동양에서 산수화란 자연의 표현인 동시에 인간이 자연에 대해 지니고 있는 노장사상에 바탕을 둔 자연관을 토대로 하여 발전된 것이다. 자연과 인간의 이러한 밀접한 관계 때문에 중국과 한국에서 일찍부터 산수화가 그려지기 시작하여 10세기경부터는 회화사의 주류를 이루었다. 우리나라에서 회화다운 회화가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4세기경 삼국시대부터인데, 산수화가 그려진 것은 인물화나 타 분야에 비하여 좀 늦은 약 5세기 초라고 여겨진다. 이 시대 회화에 관한 자료는 고구려 고분벽화가 대부분으로 산수화의 초기 양식도 고분벽화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통일신라 때는 전돌에 표현된 공예적 산수문양이 발달하였고 고려시대에는 산수화가 본격적으로 유행하여 중국과의 교섭에 의해 북송과 원나라의 화풍도 수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가 되면 고려의 전통을 이어가면서 중국에서 받아들인 다양한 화풍을 반영한 산수화들이 발달하게 된다. 조선초기에(1392∼ 약1550)에 가장 영향을 미친 화풍은 이곽파 화풍과 남송원체 화풍 등이며 대표적인 화가로 안견과 강희안 등이 있다. 조선중기의 산수화는(약1550∼1700)는 초기의 안견 화풍을 계승하면서도 절파 화풍이 크게 유행하였고 또한 명대의 미법산수화풍을 포함한 남종화풍을 수용하기 시작한다. 김제, 이징, 김명국 등의 화가가 유명하다. 조선 후기의 산수화는(약 1700∼1850) 절파 화풍이 쇠퇴하고 남종화풍이 유행하였으며 남종화풍을 토대로 한국적 산수화풍인 진경산수화가 크게 발달하였다. 대표적 화가로는 정선, 강희언, 심사정, 강세황 등이 있다. 조선말기의 산수화는(약 1850∼1910)남종화가 화단의 압도적 주류를 차지했던 시기로 김정희가 중심이 되어 조희룡, 허련 등이 활약했으며, 김수철과, 장승업도 있다. 근대에 이르면 조선 말기부터 크게 유행하던 남종문인화가 계속해서 화단의 주류를 차지하는 상황이 조석진과 안중식 등에 의해 이어졌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조선 후기의 화가 정선(鄭敾 : 1676-1759)이 그린 것이다. 겸재의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원백(元伯), 호는 겸재(謙齋)·겸초(兼艸)·난곡(蘭谷)겸재 정선의 작품으로 우리나라 산수를 독자적인 화풍으로 그렸다. 근경, 중경, 후경이 잘 나타나 있으며 오른쪽 상단에 토산을 배치하고 그 아래 초가와 지팡이를 짚은 노인과 동자를 그렸다. @ko 장경희 외 편저, "한국미술문화의 이해", 예경, 1994.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인물대사전, 중앙일보·중앙M+B, 1999. 安輝濬,
기록의 바탕

출처와 이용 안내

공공데이터포털한국문화정보원 소장자료 원본박물관·미술관·도서관·기록관 소장자료새 창 원본 수록 링크원본에 수록된 자료 링크새 창

2016년 원본에 포함된 외부 링크로, 현재는 열리지 않거나 내용이 달라졌을 수 있습니다.

자료 기준
2016-08-31
공공데이터포털 페이지 수정
2025-08-13

설명과 보유처명은 공개 원본의 표기를 따릅니다. 자료 및 이미지의 이용 조건, 복제·열람 신청은 해당 기관·보유처에서 확인해 주세요.

원본 RDF 식별자 보기

http://lod.culture.go.kr/resource/60733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