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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명기

중국에서는 한, 수, 당시대를 거치며 명기문화를 활짝 꽃피웠으나, 명대 이래 종이로 만든 명기가 유행하면서 도용(陶俑)은 쇠퇴하였다. 원본 보유·제공처: 대전대학교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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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설명

<정의> 죽은 사람의 내세생활을 위해 무덤 속에 함께 껴묻는 기물(器物). <발달과정/역사> 중국에서는 은나라 때부터 부장하는 예가 있었으며, 진시황의 무덤에서 나온 실물대 크기의 전차와 병사 말들의 토용 역시 명기로 볼 수 있다. 중국에서는 한, 수, 당시대를 거치며 명기문화를 활짝 꽃피웠으나, 명대 이래 종이로 만든 명기가 유행하면서 도용(陶俑)은 쇠퇴하였다. 우리 나라의 청동기시대 고분 출토품 역시 부장품의 일종으로 보인다. 그리고 동옥저(東沃沮) 에서는 "나무를 새겨서 죽은 자의 모양을 만드는데 죽은 자의 숫자에 따라야 한다"는 후한서의 기록은 명기의 사용을 단적으로 증명해 준다. 또한 삼국시대 토기 가운데 굽다리접시·목항아리 등 고분에 부장품들도 큰 의미의 명기이며, 조선시대에는 청화백자로도 만들어졌다. 명기의 종류로는 인상·식기·세숫대야·항아리·말·가마·향로·장군·연적 등 살아있을 때의 생활집기들이다. 이는 죽은 후에도 생전의 삶과 같은 생활을 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소형의 백자명기로 굽은 비교적 좁은 편으로 수평에 가깝게 올라갔으며, 여기서 뻗어나간 몸체는 반원형을 그리며 올라가다 끝에서 외반하며 구연부를 형성한다. 그릇의 내, 외면에는 특별한 문양이 없으며, 단지 유약이 흘러내려 뭉친 흔적과 물레질에 의한 흔적이 약하게 남아 있다. 그릇의 내면은 기벽과 바닥부분이 경계가 지며, 바닥의 가운데는 약간 오목하게 들어가도록 처리하였다. 태토는 비교적 고운 편으로 정선이 잘 된 상태이다. 굽바닥에는 내화토 받침이 있었으나 소성 뒤 떼어내는 과정에서 내화토가 통째로 떨어져 나가 태토의 원색이 그대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볼 때 그릇의 내, 외면에 빙열이 보이지 않으며, 훼손된 곳도 없는 완전한 상태의 유물이다. @ko <<한국고고학개정용어집>>, 한국고고미술연구소, 1984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박물관도록>>, 대전대학교박물관, 2000 <<숭실대학교박물관도록>>,숭실대학교박물관, 2004
기록의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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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기준
2016-08-31
공공데이터포털 페이지 수정
2025-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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