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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부쳐서 바람을 일으키는 기구.
<개설>
부채란 손으로 부쳐서 바람을 일게 하는 기구이다. 부채는 가는 대오리로 살을 만들어 넓적하게 벌려서 그 위에 종이나 헝겊을 바른 것으로써 무더위에 바람을 일으켜 시원하게 하는데 사용된다.
<역사>
부채는 ‘부치는 채’라는 말인데, 이 말이 줄어서 ‘부채’가 된 것이다. 부채를 한자어로는 ‘선자(扇子)’라고 한다. 고려 때 송나라 사람 손목(孫穆)은 [계림유사 鷄林類事]에서 우리말의 부채를 표기하여 “선왈부채(扇曰厄采)”라 하였다. 16세기 조선 중종 때 사람 최세진(崔世珍)의 [훈몽자회]와 한호(韓濩)의 [천자문]에는 ‘선(扇)’을 ‘부체 션’이라 하였음을 보아 고려 및 조선시대에도 부채라고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부채는 중국 진(晉)나라 때의 학자 최표(崔豹)의 [고금주 古今註]에서 중국의 순(舜)임금이 오명선(五明扇)을 만들었다 하였고, 초량선(招凉扇)은 주나라 무왕이 만든 것이라 하였다. 또 회선(檜扇)이라는 부채가 있는데, 이것은 회나무 껍질 25개를 엮어 만든 것으로서 흰 종이로 바르고 그 위에 등꽃모양을 놓아 띠같이 만들었다고 하였다. 일본 부채는 본래 회선에서 비롯된 것으로 종이부채는 그 뒤 회선에서 전작(轉作)된 것이라 하였다. 회선의 창제 연대에 대하여서는 문헌상의 기록이 없으므로 불분명하나 나라시대(奈良時代)의 초기에는 아직 부채가 발명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문헌 가운데 부채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는 [삼국사기] 견훤조에 “우리 태조를 추대하여 즉위하였다. 견훤은 이 말을 듣고 그 해 8월에 일길찬(一吉飡) 민극(閔筐)을 파견하여 이를 하례하고 드디어는 공작선(孔雀扇)과 지리산 대화살(竹箭)을 보냈다.”라는 대목이 있다. 이로써 우리나라에는 10세기(고려 초)에 이미 부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공작선은 남방의 여러 나라에서도 공작의 깃으로 둥근 부채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견훤이 하례품으로 주었던 공작선도 둥근 부채(방구부채)였다고 보인다. 접는 부채(접부채)가 우리나라에 있은 기록은 송나라 사람 곽약허(郭若虛)의 [도화견문지 圖怜見聞志]에 고려사신 최사훈(崔思訓)이 1076년 신종 희녕 병진년(문종 30)에 접는 부채(摺疊扇〕를 사용하였다고 한 것을 보아, 접는 부채가 11세기 중엽에는 우리나라에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 방구 부채는 부채살에 종이를 붙인 후 주칠을 하고 기름칠을 한 다음 한쪽면에 화접도를 그려 넣었다.)
@ko
고려사, 조선왕조실녹, 고려도경, 오주연문장전산고, 열하일기, 청장관전서, 경도잡지, 렬양세시
기록의 바탕
출처와 이용 안내
2016년 원본에 포함된 외부 링크로, 현재는 열리지 않거나 내용이 달라졌을 수 있습니다.
- 자료 기준
- 2016-08-31
- 공공데이터포털 페이지 수정
- 2025-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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