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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도

호랑이는 예로부터 산의 신령으로 믿어져 왔으며 차츰 신앙의 대상으로까지 신격화되었으며, 이를 불교에서도 받아들여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다. 원본 보유·제공처: 한국미술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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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설명

<정의> 산왕(山王)으로 신앙되던 호랑이가 의인화(擬人化)된 산신(山神)을 표현한 불화(佛畵). <유래 및 발달과정> 호랑이는 예로부터 산의 신령으로 믿어져 왔으며 차츰 신앙의 대상으로까지 신격화되었으며, 이를 불교에서도 받아들여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다. 중국에서는 수 대에 천태산(天台山) 국청사(國淸寺)에 절의 수호신으로 산왕각(山王閣)을 세우고 산신을 봉안한 이래부터 산신신앙이 이어져 왔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까지는 산신에 대한 신앙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불교가 민간신앙과 결합하면서 토착화하는 과정에서 산신에 대한 신앙이 유행하여 조선시대의 사찰에는 대개 산신각(山神閣)을 세워 상과 불화를 봉안하고 있다. 대개 산신도는 깊은 산과 골짜기를 배경으로 기암괴석 위에 백발이 성성한 노인 모습의 산신이 동자를 대동하고 앉아 있고, 산신 옆에는 호랑이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산신은 사찰에 들어와 먼저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중(護法神衆)이 되었다가 점차 산중 생활의 평온을 지켜 주는 외호신(外護神)의 역할과 함께 하근기(下根機)의 서민들이 자식과 재물을 기원하는 기도의 대상으로 발전되었다. 산신도를 민화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경우가 있는데, 그 이유 중에 하나는 필력을 갖춘 화승(畵僧)들이 도상(圖像)에 의거하여 그린 불, 보살이나 신중도와는 달리 비교적 자유스러운 형식과 치기 어린 표현을 보여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신도는 보통 민화처럼 서민들이 일상의 생활 속에서 향유하는 생활 미술이 아니라, 신앙의 대상으로 그려지는 일종의 종교화의 일종이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기암괴석(奇巖怪石)과 소나무가 드리워진 계곡에 호랑이와 산신이 그려져 있다. 산신은 둥근 얼굴에 붉은 입술이 표현되었고, 흰 수염과 흰 눈썹이 세필(細筆)로 표현되어 있다. 머리에는 상투관과 그 위에 망사두건을 쓴 후 뒤에서 매듭을 묶었다. 오른손은 사슴뿔〔鹿角〕을 쥐고 있다. 적색의 대의(大衣)에 녹색의 견대(肩帶)와 복대(腹帶), 흰색의 바지를 입고 있다. 호랑이는 호분(胡粉)을 사용했으며, 바탕색을 채색(彩色)한 후 묵선(墨線)으로 짧은 선을 그어 털을 묘사하였다. 입을 벌려 산신의 의복(衣服) 자락을 물고 있다. 화면(畵面) 중앙에 있는 원형의 청색 배경과 기암괴석의 표현, 영지버섯 등은 본래의 바탕 위에 짙은 적색과 청색을 써서 덧칠한 것이다. 화면(畵面)의 하단에는 적색바탕에 묵서로 쓰인 화기(畵記)에는 ‘佛紀二千□百六十五□ 化史 崔般若願(불기이천□백육십오□ 화사 최반야원)’이 있다. @ko 한국정신문화연구원,『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1992. 김원룡 감수,『한국미술문화의 이해』, 예경,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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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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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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