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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내용> -명주에서 세월이 많이 흘렀다. 관리들은 백성들을 잘 규훌하고 정치를 잘 한다. 문장들은 독특하고 차향기가 은근하고 한가한데 바다 모래 언덕에 해당화가 핀것이 진기스럽다. 돼지가 유풍에 변화되어 신선처럼 풍류가 어우러진다. 즉흥적으로 시를 읊다. 김동표. <해석 : 김규영, 최병선> *한시(漢詩) 한국·일본 등지에서 한문(漢文)을 사용하여 중국의 전통적인 시가(詩歌)양식에 따라 지은 문학 작품을 자국 어문(自國語文)으로 된 시가와 구별하여 부르기도 하며 통속적으로는 중국의 전통적인 시가 문학까지를 포함해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이 용어가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근대 민족주의가 형성되고 종래의 국문(國文)과 한문에 의한 2원적인 어문 생활이 국문으로의 단일화 방향으로 진행되어 국문시가 그 주체적 자리를 차지하게 되자 지금까지의 한문시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게 되면서부터였다. *조선시대의 한시 조선 전기의 시사(詩史)는 사대부층의 자기분화(自己分化)에 의한 상이한 성격과 체질을 가진 그룹들의 존재를 배경으로 다양한 시세계를 보여주었다. 조선 왕조 체제를 수립하고 15세기 역사의 주역이 되었던 훈구관료계(勳舊官僚系)는 대체로 문학의 표현이나 장식적인 기능을 존중하는 태도로 창작에 임했는데, 이 계열의 전형적인 존재인 서거정(徐居正)은 다분히 유한적(遊閑的)인 기분으로 감각적인 이미지와 교묘한 시어를 구사하여 화미(華美)·부염(富艶)의 미학을 지어내었고 같은 시기의 강희맹(姜希孟)은 그의 전원(田園) 생활의 체험에서 민요의 세계를 작품화하기도 했으나 귀족적인 한아(閑雅)의 시경(詩境)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조금 뒤의 성현(成俔)의 시는 주정성(主情性)·낭만성을 띠면서도 불우한 서민생활을 그려보이는 등 작품세계의 폭을 넓혀나갔다. 한편 체제에서 일탈된 세력이라 할 수 있는 방외인계(方外人系)의 대표적 인물인 김시습(金時習)의 시세계는 초일(超逸)한 심회와 고원한 포부가 읊어지기도 하였으며, 재야(在野) 세력으로 남아 있다가 사림계(士林系)의 선두로 중앙에 진출한 김종직(金宗直)은 중후하고도 역동적인 시풍으로 유명했다. 조선 초기의 시에는 중국 송시(宋詩)의 영향이 현저했던 편이었는데 이런 경향을 대표적으로 보여준 시인은 이행(李荇)과 박은(朴誾)으로, 이들을 `해동강서파(海東江西派)`라고 불렀다. 이들과 비슷한 시기에 관노(官奴) 출신 어무적(魚無迹)이 지배층에의 강렬한 저항 시편을 남겨 이 시기의 시사상 특이한 존재로 떠올랐다. 관찬(官撰)으로 성종 때 이루어진 《동문선(東文選)》과 중종 때 이루어진 《속동문선(續東文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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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기준
- 2016-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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