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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색 명주 솜반회장 저고리

저고리는 옛부터 남녀가 공통으로 착용한 가장 기본적인 상의이다. 원본 보유·제공처: 숙명여자대학교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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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설명

솜을 두어 만든 여자용 저고리. 저고리는 옛부터 남녀가 공통으로 착용한 가장 기본적인 상의이다. 솜저고리는 겹저고리의 겉감과 안감 사이에 솜을 두어 만든 저고리로 핫저고리라고도 한다. 이는 보온과 외부로부터의 자극에 신체를 보호하기 위하여 착용하였다. 대개 겨울에 주로 방한을 위하여 착용하였으나 초봄이나 가을에 자미사나 명주에 얇게 솜을 두어 입기도 하였다. 또한 전쟁시 갑옷 아래에 입어 신체를 보호하기도 하였다. 솜저고리와 같이 솜을 둔 옷은 바지와 겉옷인 철릭, 직령과 버선 등에 이르기까지 널리 사용되었다. 사용되는 옷감의 종류도 다양하여 두꺼운 비단류 뿐 아니라 사(紗), 명주(明珠), 백저(白苧) 등을 사용한 의복이 널리 사용되었다. 저고리에 솜을 두는 방법에는 크게 겉감과 안감사이에 솜을 넣고 줄이 죽죽지게 홈질로 재봉하는 누비기법과 중간 재봉선이 없이 솜을 둔 것이 있다. 누비는 대개 세로선이 지게 하였는데 그 간격은 5㎜정도로 촘촘한 것부터 10㎝정도의 널직한 것까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솜을 두껍게 넣은 경우는 누비간격이 넓고 바느질 땀수도 엉성하며 얇게 솜을 넣은 것은 누비간격이 좁고 땀수도 정교하다. 저고리의 형태의 변화와 유사하게 솜저고리도 변화하였다. 조선시대 초기까지 등길이가 허리정도에 이르고 소매통이 좁고, 화장이 길고 수구에 넓은 끝동이 달려 있던 것이 점차 길이가 짧아지고 소매배래도 곡선으로 변화되었다. 또한 깃의 형태도 목판깃이 당코깃을 거쳐 둥근깃으로 변화되었고 고름이 가늘고 짧았던 것이 점점 넓고 길어졌다. 그러나 솜저고리는 기본적으로 겹저고리나 깨끼저고리에 비하여 직물자체의 두께가 두껍고 뻣뻣하였으며 실용적인데 목적을 두었으므로 예의를 갖추거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옷으로는 적당하지 않았다. 삼회장 저고리란 조선시대에 시작된 저고리 형식으로서 노랑이나 연두 바탕에 자줏빛 천으로 깃·끝동·고름을 달고, 저고리 겨드랑이에 자줏빛 곁마기를 댄다. 또는 남끝동에 자줏깃·자주고름·자주곁마기를 다는 경우도 있다. 곁마기가 없는 것은 반회장저고리라 한다. 명주란 원래 명(明)나라에서 생산한 견직물(絹織物)을 가리킨 것이었으나 오늘날에는 주로 견사(絹絲)를 사용하여 짠 직물을 말한다. 명주는 다른 섬유직물이 갖지 않는 특성으로서 우아한 광택과 풍부한 촉감 및 비단소리(scrooping) 등이 있는데, 이러한 성질은 생명주(생사 ·생견직물)에서는 볼수 없고 불순물이 제거된 후에야 나타난다. 생명주의 주된 불순물은 세리신(sericine)이며, 이 세리신은 그 성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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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31
공공데이터포털 페이지 수정
2025-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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