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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막새(圓瓦當)

고려는 통일신라의 문화를 계승한 위에 불교가 성행하면서 많은 가람(伽藍)의 조영에 따라 기와에도 발전을 보인다. 원본 보유·제공처: 대구대학교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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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설명

<정의> 수막새는 드림판이 달린 수키와로서, 재래식 기와에서 지붕을 이을 때, 두 암키와 사이를 어울러 엎어 기왓등을 만들 때 마지막 부분에 얹는 기와. <발달과정/역사> 한국에 기와가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정확히 밝힐 수 없으나 한사군(漢四郡) 설치 전후로 추정되며, 이후 3세기말 이후가 되면 한국적인 양식으로 발전되었다고 본다. 백제는 나라에서 쓰는 기와만을 전담하는 와박사(瓦博士)의 직제(職制)가 있었고, 신라에는 특별히 와당만을 제조하는 와기전(瓦器典)이란 마을이 있었고, 중국의 『신당서(新唐書)』에는 “고구려는 왕실과 관부 또는 불사(佛寺)에 기와를 사용하였다”라는 기록이 전하고 있어, 삼국시대 건물지(建物址)에서 확인되는 유물과 함께 고구려, 신라, 백제가 각기 특성을 가지며 발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려는 통일신라의 문화를 계승한 위에 불교가 성행하면서 많은 가람(伽藍)의 조영에 따라 기와에도 발전을 보인다.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에 영향 받아 검소 질박한 기풍이 장려됨으로서 기와에도 영향을 미쳤다. 수막새에는 연화문, 귀면문, 범자문, 봉황문 등, 대체로 고려적인 요소가 계승되지만, 솜씨가 옛것만 못하였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기와는 지붕에 씌워 눈과 빗물의 침수를 차단하고 이를 흘러내리게 하여 지붕 재목의 부식을 방지함과 동시에 건물의 경관과 치장을 위하여 사용된다. 이중 수막새는 동와당(童瓦當). 모와당(牡瓦當). 부와당(夫瓦當)라고도 하는데, 위쪽에서 보면 평면이 긴 장방형이고 너비 단면은 반구형호(半球形孤)를 이룬다. 안쪽 끝에는 서로 연결시키는 부분인 언강이, 반대편에는 내림새[드림판]가 달려 있다. 이 수막새편은 더 약화되고 도식화되었으며 자방(子房)과 연판(蓮瓣)을 경계 지우는 원권(圓圈)도 소멸되었다. 수키와의 접합부는 둔각상태(鈍角狀態)이며, 뒷면에는 포흔(布痕)이 있다. 자방(子房)은 많이 돌출된 반구형(半珠形)을 하고 있다. 주연(周緣)은 좁고 그리 높지 않다. @ko 시공테크, 『그림과 명칭으로 보는 한국의 문화유산』, 1999. <기타참고> 崔孟植, 『百濟 평기와 新硏究』, 학연문화사, 1999. 朴洪國, 『三國末-統一初期 新羅瓦塼에 대한 一考察』, 東國大學校大學院碩士學位論文, 1986. 金東賢 外, 『新羅의 기와』, 韓國建築史文系Ⅴ-建築과 紋樣 上-, 東山文化史,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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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31
공공데이터포털 페이지 수정
2025-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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