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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발편

경기도 용인시 원삼면 학일리 일대에서 수습된 백자대접편이다. 원본 보유·제공처: 명지대학교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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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설명

<정의> 경기도 용인시 원삼면 학일리 일대에서 수습된 백자대접편이다. <발달과정/역사> 고려시대 만들어지기 시작하던 백자는 조선으로 접어들며 청화(靑畵)나 철화(鐵畵)안료를 사용하여 문양을 그릴 수 있을 정도의 백색과 경도를 확보한다. 동시에 부족한 자원인 금속을 대체하여 자토를 이용한 그릇의 제작이 일반화되면서 백자 소비층은 점점 확대된다. 임진왜란이라는 요업적 시련기를 거친 조선 백자는 이전시기 청화안료에 대신하여 산화철을 주된 안료로 이용, 조선적인 미감을 백자에 한껏 투영시킨 모습을 보인다. 18, 19세기 백자의 경우 왕실과 사대부 소용 고급백자는 경기도 광주를 중심으로 제작하고 나머지 민간용 백자는 곳곳의 지방가마터에서 만들어낸다. 이 시기 지방 민간용 백자는 이전 시기보다 폭넓은 계층이 사용하게 되면서 수요가 증가하여 기벽이 두꺼워지고 유색은 회백색으로 어두워진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두 개의 그릇을 포갠 후 위에 올라간 그릇 내부에 제기형 도침을 놓고 다시 그 위에 소형의 기물을 올려 번조하였던 그릇의 파편이다. 가마안 사정으로 인하여 기형이 일그러졌다. 모래와 기포가 섞인 회백색 태토에 회백색 유약을 시유하였는데 그 상태가 고르지 못하며 그릇 표면에 잡물이 다수 내려붙었다. @ko 김재열 외,《용인의 도요지》, 용인시 외, 1999. 윤용이,《한국도자사연구》, 문예출판사, 1993.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05.
기록의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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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기준
2016-08-31
공공데이터포털 페이지 수정
2025-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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