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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전은 조선시대에 정상적으로 통용되는 주화(鑄貨)와 구분하기 위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실용성보다는 장식용으로 사용된 주화이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주조되었던 화폐는 성종 15년(996) 4월에 처음으로 철전(鐵錢)을 사용하였다는 {고려사(高麗史)} [식화지(食貨志)]의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철전이다. 그 이전에는 곡물·직물·철 등의 상품화폐가 일반적인 유통수단이었다. 고려시대에는 이외에도 지형을 본떠 만든 은화인 銀甁과 소액화폐로서 해동통보(海東通寶)·해동중보(海東重寶)·삼한통보(三韓通寶)·삼한중보(三韓重寶)·동국통보(東國通寶)·동국중보(東國重寶) 등이 숙종대에 발행되었다. 고려시대의 주화는 주전도감(鑄錢都監)에서 주조되었으나, 숙종 2년(1097) 12월 주전궁(鑄錢宮)을 두어 홍복도감(弘福都監)에서 발행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고려의 화폐를 사용하다가 세종 5년(1425)에 조선통보(朝鮮通寶)가 발행되었고, 세조 10년(1469)에는 무기로도 사용될 수 있는 화살촉 모양의 전폐(箭幣) 10만개를 주조하였다. 임진왜란 이후 상품 교환경제의 발달과 더불어 화폐의 필요성이 확대됨에 따라 숙종 4년(1678) 상평통보(常平通寶)가 발행되었는데, 이는 근대화폐가 주조되기 전까지 전국적으로 유통되었다. 초기에는 호조(戶曹)·상평청(常平廳)·진휼청(賑恤廳)·어영청(御營廳)·훈련도감(訓練都監) 등의 중앙관서에서 주조하였고, 1678년 6월 평안도와 전라도의 감영과 병영에서도 동전을 주조케 하였으나, 주화의 소재가치가 일정치 못하여 공신력이 저하되자 정조 10년에는 호조와 선혜청(宣惠廳)에서만 주전을 담당케 하였다. 조선후기에는 조세수입의 부족을 보충하기 위해 화폐의 주조권을 남용하여 명목가치와 실질가치의 괴리가 큰 당오전(當五錢)과 당백전(當百錢)을 발행하였다. 폐제의 문란이 일어나자 고종 5년(1868) 당백전의 통용을 금지시키고 1867년 가경통보(嘉慶通寶)·도관총보(道光通寶)·동치통보(同治通寶) 등의 청전(淸錢)이 수입되었는데, 실질가치는 상평통보의 1/3에 불과하였으나, 상평통보 유통량의 30∼40%에 달하였다. 별전(別錢)이란 조선시대에 정상적으로 통용되는 주화(鑄貨)와 구분하기 위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별전은 고려시대에 중국으로부터 전래되었으나,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시기는 조선 숙종 4년(1678) 이후인 듯 하다. 이 때부터 주조되기 시작한 상평통보(常平通寶)의 주조시 주전관(鑄錢官)인 호조(戶曹)에서 그 재질과 중량 등을 시감(시감)할 때 만들어진 일종의 시주화 내지 기념화로써 법화인 상편통보처럼 유통되지 않고 당시의 왕실 또는 사대부 계급의 기호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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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기준
- 2016-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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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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