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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바람이나 공간을 막는 가리개.
<발달과정/역사>
중국 한(漢)나라 때부터 만들기 시작하여 당(唐)나라 때에 널리 사용되었다. 한국에서는 686년(신문왕 6)에 일본에 금은 ·비단과 함께 수출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시대에도 여러 문집 가운데 병풍에 관한 기록이 많이 있음을 보아 사대부의 가정에서 널리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도 전기의 작품은 전하지 않으나, 중기 이후부터 후기에 걸쳐 그림과 수를 놓은 병풍이 많이 전해지고 있다. 수병풍(繡屛風)의 현존 유물로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정명공주(貞明公主:1603∼1685)의 신선도(神仙圖) ·산수도(山水圖), 현종(顯宗:1660∼1674)이 발기(跋記)하였다는 서왕모도(西王母圖) 등이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병풍은 본래 바람을 막거나 공간을 가리는 가리개의 역할을 하는 실용적인 면과 벽면을 장식하는 장식적인 면, 그리고 주술적인 염원을 목적으로 하는 주술적인 면이 있다. 이에 따라 병풍의 종류도 글씨병풍, 일월병풍, 장생병풍, 신선도병풍, 화조병풍, 산수도병풍 등이 있는 데,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글씨병풍이다.
현재 한국에서는 10폭과 8폭 또는 12폭짜리도 많이 이용된다. 이 밖에도 6폭 ·4폭 ·2폭의 것이 있으며 2폭의 것은 속칭 가리개라고 불린다. 또 머리맡에 치는 침병(枕屛), 한 주제의 그림만으로 꾸민 왜장병(倭粧屛), 여러 주제의 작은 그림이나 글씨 ·탁본 등을 붙이거나, 기타 도장 등을 찍어 꾸민 백납병(百納屛), 수를 놓아 꾸민 수병(繡屛) 등이 있다. 왜장병은 일본에서 전하여 왔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다. 이 밖에 특수한 것으로 궁전에서 용상 뒤에 치는 일월병(日月屛)이 있다. 이는 흔히 쓰이는 산수화 ·화조 등의 그림으로 꾸미는 것이 아니라, 해와 달에 십장생(十長生)을 당채(唐彩)한 것으로, 간혹 해와 달은 놋쇠로 만들어 붙이는 경우도 있다. 수병풍은 회화성이 있는 그림이면 어느 것이나 주제가 될 수 있다.
@ko
김원룡 外, "韓國美術史",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4.
경기대학교 박물관, "韓國民畵圖錄", 2000.
안휘준, "한국회화사", 일지사,
기록의 바탕
출처와 이용 안내
2016년 원본에 포함된 외부 링크로, 현재는 열리지 않거나 내용이 달라졌을 수 있습니다.
- 자료 기준
- 2016-08-31
- 공공데이터포털 페이지 수정
- 2025-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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