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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낫

청동기시대 이후의 대표적인 수확도구로는 반달돌칼이 있으며 이삭을 하나하나 따는 정도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시대·제작시기: 5-6세기. 원본 보유·제공처: 국립중앙박물관.

보유·제공처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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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설명

<정의> 삼국시대의 대표적인 곡물수확도구. <발전과정/역사> 선사시대에는 동물뼈를 가공하거나 돌로 된 낫이 있었으나 그 예가 매우 적다. 청동기시대 이후의 대표적인 수확도구로는 반달돌칼이 있으며 이삭을 하나하나 따는 정도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삼한시대 이후 주로 고분에서 출토되는 곡물을 포기 째 베는 용도로 매우 효과적이었다. 쇠낫은 날의 형태에 따라 굽은날 낫과 바로선날 낫으로 나뉘며 전체적인 변화 경향은 날의 너비가 넓은 것에서 좁은 것으로 날끝이 직선적인 것에서 곡선적인 것으로 농업의 발전에 따라 변화한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형태는 가늘고 길게 만든 얇은 철판의 한쪽을 구부려 접어 나무자루에 끼운 것으로 지금의 낫과 거의 동일한 형태이다. 이 쇠낫의 손잡이에 끼워지는 부분(기부, 基部)는 끝이 짧은 `ㄴ`자 모양으로 접혀있다. 몸체는 수평을 이루다가 끝부분은 날이 선 쪽으로 구부려 끝이 뾰족하게 처리되었고, 단면은 이등변삼각형 모양이다. 기부의 `ㄴ`자 모양으로 꺽여진 쪽에는 넓이 2.5cm의 나무결의 흔적이 몸체의 길이 방향과 직교하게 남아 있다. 반대쪽에는 몸체의 길이 방향과 일치하는 나무결의 흔적이 길이 2cm, 폭 1.4cm 정도 남아 있다. 쇠낫의 부착상태는 나무손잡이에 직각되게 박았으며 쇠낫이 손잡이에서 빠지지 않도록 뒤쪽에서 쐐기를 박은 것으로 예상된다. @ko 국립문화재연구소, "한국고고학사전", 2001. 안동대학교박물관·안동시, "安東 太華洞 古墳群", 안동대학교박물관,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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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31
공공데이터포털 페이지 수정
2025-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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