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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대접(白磁대접)

신라말에서부터 제작되기 시작하였으나 주로 조선시대에 유행하였다. 원본 보유·제공처: 대구대학교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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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설명

<정의> 철분이 거의 포함되어 있지 않은 백토를 이용하여 형태를 만들고 철분이 거의 포함되지 않은 무색투명의 장석질 유약을 입혀 1300℃ 이상의 고온에서 환원번조의 방식으로 구워낸 자기. <발달과정/역사> 신라말에서부터 제작되기 시작하였으나 주로 조선시대에 유행하였다. 백자는 14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여러 가지 기법으로 제작, 발달되었으며 조선전기에는 고려의 영향을 받은 부드러운 질감의 연질백자(軟質白磁)가, 중후기에서는 중국의 원(元), 명(明)나라의 흐름을 이어 받은 경고성을 띠는 경질백자(硬質白磁)가 주를 이루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경주 동천동 군사시설물 건립예정지의 밤나무단지 내 유구 24호에서 출토되었다. 녹갈색을 띠며 구연(口緣)은 밖으로 벌어져있고 소성상태는 불량한 편이다. 내부 바닥면에 4개의 내화토(耐火土) 받침눈 흔적이 있고 굽은 노태(露胎)이며 기형이 전체적으로 비대칭적이다. 1/2일 정도가 산화되었고 유약은 박리된 상태이다.
기록의 바탕

출처와 이용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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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기준
2016-08-31
공공데이터포털 페이지 수정
2025-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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