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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작보(聖爵褓)
초기 유형의 전례용 성작은 술잔에서 변형 발전되었다. 시대·제작시기: -1970년대. 원본 보유·제공처: 가톨릭대학교 전례박물관.
보유·제공처가톨릭대학교 전례박물관
원본의 내용을 읽다
<정의> 성작과 성반 성작덮개를 덮는 보자기 <유래 및 발달과정/역사> (참고) 성작 : 미사 중 성찬 전례 때 포도주를 봉헌하고 성혈로 축성된 후 받아 모시기 위해 사용되는 축성된 잔으로 미사 봉헌만을 위해 사용되므로 ‘거룩한 그릇’이라고 한다. 초기 유형의 전례용 성작은 술잔에서 변형 발전되었다. 6세기경에는 넓은 잔과 그것을 받치는 깔대기 모양의 받침과 중간 마디가 있는 대로 구성된 성작의 고전적인 형태가 정착되었다. 7-8세기 이후에는 마실 때 편리하도록 주둥이가 달린 커다란 성작들이 등장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신자들이 성체성사 성작에 직접 입술을 대고 성혈을 받아 모실 때 흘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12세기 때는 후기 로마네스크식의 큰 성작과 카롤링거 시대의 레부이누스 성작의 기본 구조가 혼합된 큰 잔 형태의 성작이 대표적이다. 13세기부터는 성작에 부착된 손잡이가 점차 사라지면서 중간 마디 부분이 손잡이 기능을 대신하게 되었다. 14-15세기의 성작은 고딕식의 가늘고 긴 형태로, 깔대기 모양의 잔과 고딕식의 꽃잎 모양이 양각되어 있는 받침 부분과 십자가가 붙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성작이 이렇게 변화한 것은 12세기까지 성체성사 성작이 수도 공동체 내에서 사용되다가 13세기 이래로 사용이 금지된 데에 그 원인이 있다.) 그 후 17-18세기 즉 바로크 시대에는 고딕식에서 특별한 변화를 보이지 않았는데, 컵 모양의 잔 부분과 금은 세공이나 상아를 박아 넣는 세공법을 이용해 장식한 길다란 대 부분과 그 중간에 보다 세련되게 장식된 마디와 무겁고 튼튼한 받침 부분으로 구성된 것이 대부분이었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성작은 고대의 성작처럼 크고 장식 없이 단순한 술잔 모양으로 제작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성반 : 미사 중 축성될 제병, 특히 사제용 제병을 놓아두는 전례 용구이다. 둥글고 평평하면서도 약간 오목한 접시 모양으로, 주로 성작과 같은 재질로 만들어진다. 옛 성반들은 이따금 유리나 목재로 만들어지기도 하였지만 대부분은 금이나 금박을 입혀 만들어졌고, 보석을 이용하여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그러다가 카롤링거 왕조 때부터 점차 간소화되고 단순화되면서 현재 사용되고 있는 성반과 같은 모양을 갖추기 시작하였다. 9세기경에는 팔각형의 성반과 성작이 있었으며, 10세기 후반 이후에는 내부가 파인 둥근 접시 모양에 하느님의 어린 양 등이 묘사된 상당히 작은 성반이 등장하였다. 그 후 점점 많은 수의 잎이 달린 꽃문양이 그려진 성반이 등장하였으며, 후기 로마네스크식의 성반은 십자가가 달리고 도금을 한 둥근 은 성반이 대부분이었다. 현재 미사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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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기준
- 2016-08-31
- 공공데이터포털 페이지 수정
- 2025-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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