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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능묘 앞에 세우는 피장자(被葬者)를 수호하는 상징물의 하나로서 돌에 조각한 사람의 형상.
<유래 및 발달과정>
왕족(王族) 등이 능묘(陵墓)를 더욱 장엄하고 권위 있게 꾸미기 위해 설치한 것으로 문무(文武)인의 석상이 고인(故人)을 영원히 수호(守護)하게 한다는 의미도 있다. 중국에서는 한대(漢代)부터 예를 볼 수 있으나 한국에서는 신라 성덕왕릉(聖德王陵)에 처음으로 설치하였다. 석인에는 신라시대 이래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문관석이고 하나는 무관석이다. 문관석을 문인석(文人石), 무관석을 무인석(武人石)이라고도 하여 반드시 대를 이루어 설치한다. 신라 왕릉 중에서 석인이 있는 능은 성덕왕릉, 괘릉, 흥덕왕릉이다. 1916년의 조사에 의하면 고려시대에도 38개의 왕릉이 있었다고 하나 이들은 심한 손상을 입어서 원형대로 있는 것은 드물고, 조선시대 왕릉에는 빠짐없이 문무인석이 한 쌍씩 설치되어 원형이 유지되어 있으나 그 양식은 공민왕릉의 문무인석 양식을 모방하여 일률적이다. 문인석은 관을 쓰고 관복을 입으며 홀(笏)을 들었고, 무인석은 갑옷을 입고 직립(直立)하여 장검(長劍)을 잡고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16cm 높이의 사각(四角) 위에 서 있는 입상이다. 동글동글한 얼굴에 오목조목한 이목구비, 크고 넉넉한 귀와 입가에 띤 엷은 미소가 온화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양손은 가지런히 가슴 앞으로 모으고 있다. 사각기둥형태의 돌을 깎아 조각하였다. 전체적으로 보존 상태는 양호해 조각표현이 비교적 선명하게 남아있는 편이다.
@ko
한국정신문화연구원,『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992.
김원룡 감수,『한국미술문화의 이해』, 예경, 1994.
기록의 바탕
출처와 이용 안내
2016년 원본에 포함된 외부 링크로, 현재는 열리지 않거나 내용이 달라졌을 수 있습니다.
- 자료 기준
- 2016-08-31
- 공공데이터포털 페이지 수정
- 2025-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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