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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청접시

분청사기는 고려 시대 말기에 나타난 수법을 계승하여 상감과 인화의 수법을 병행하여 쓰기 시작했다. 원본 보유·제공처: 경희대학교 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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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설명

<정의> 분장회청사기(紛粧灰靑沙器)의 준말로 백색의 물감으로 표면에 무늬를 장식하고, 회청색의 유약을 발라서 구원 낸 그릇. <발달과정 및 역사> 분청사기는 고려 시대 말기에 나타난 수법을 계승하여 상감과 인화의 수법을 병행하여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차차 상감 수법은 사라지고 인화무늬가 우세해지더니, 인화무늬 하나하나의 무늬가 작아지면서 그릇 표면 전체에 찍혀서, 인상적인 특징을 발휘하기에 이르렀다. 유약의 색조도 처음에는 고려 청자의 여운을 남기어 청색이 나다가 차차 백색으로 변해갔다. 그릇의 형태 또한 고려 시대 자기와는 현저한 변화를 일으킨다. 도공이 그린 그릇 표면의 그림은 어떤 물체를 나타내려는 사실적인 그림이 아니라 그저 무심하게 그린 그림이다. 이와 같은 독특한 감각을 나타낸 분청사기에 중대한 변화를 일으킨 사건이 바로 임진왜란인데, 이 때 왜군에 의한 도공의 납치로 말미암아 분청사기는 자취를 감추고 백자 혹은 청화백자 일색이 된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백토를 탄 물에 그릇 굽다리를 잡고 거꾸로 덤벙 담갔다가 꺼내어 표면이 백토분장된 분청접시이다. 백토 분장된 상태가 균일하지 않아 그릇 안쪽에는 뭉친 흔적과 구연부쪽은 덜 묻어 태토가 드러나 보이기도 한다. @ko 진홍섭 저, "청자와 백자", 세종대왕기념사헙회, 1999. 장경희 외, "한국 미술문화의 이해", 예경, 2002. 호암미술관, "분청사기명품전", 2001. 정양모 저, "한국의 도자기", 문예출판사, 1991
기록의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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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기준
2016-08-31
공공데이터포털 페이지 수정
2025-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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