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의 내용을 읽다
<정의> 수묵재 박성민(守默齋 朴成敏, 1603-1666)의 실기이다. <일반적인 형태 및 특징> 편자인 박관식(朴觀植)은 박성민의 10대손이다. 박성민은 본관이 함양(咸陽)이고 자는 성(聖) 이며 호는 수묵재(守默齋)이다. 그는 1603년(선조 36)에 태어나서 1666년(현종 7)에 죽었다. 그는 행정(杏亭) 박눌(朴訥)의 5대손이고, 부친은 영선(榮先)이며, 모친은 진주 강씨이다. 박성민은 함창의 우거(寓居)에서 과거응시를 겸한 학문연마에 힘쓰고 있다가 병자호란이 일어나고 이듬해 강화가 성립하자 과거를 포기하였다. 그는 함창의 청암에 재실을 짓고 수묵이라 편액하였다. 여기에서 고황제의 충효절의 네 자를 병풍으로 만들어 조석으로 삼가 바라보면서 생활하였다고 한다. 그는 또한 평생토록 무명지(無明指)를 펴지 않고 지내면서 강화의 굴욕을 잊지 않았다고 한다. 책머리에 1929년 김세락(金世洛)이 지은 서(序)가 실려 있고 말미에 김소락(金紹洛), 권상규(權相圭), 박면진(朴冕鎭), 박관식(朴觀植)이 붙인 후지(後識)가 있다. 목록이 붙어 있고, 본문 처음에는 영련(詠蓮)등 6편의 시가 실려 있다. 부록으로 채형락(蔡亨洛)이 지은 행록(行錄), 문손(門孫) 박주종(朴周鍾)이 1916년에 쓴 행장, 1920년에 문손 박화진(朴華鎭)이 만든 묘지(墓誌), 청암서원향축문(淸巖書院享祝文), 묘소수갈고유문(墓所竪碣告由文), 함창읍지(咸昌邑志) 중에서 박성민을 설명한 조항 등이 수록되어 있다. 계속해서 임암산송시사적(立巖山訟時事蹟)이 실려 있는 데 여기에는 세편의 정문(呈文)이 실려 있다. 첫번째로 21명의 유생이 박성민의 묘소 청룡자리에 투장(偸葬)을 감행한 안과 박이라는 성을 가진 두 명의 상한(常漢)을 즉각 독려하여 굴장(掘葬)하도록 지시할 것을 청하는 내용의 함창사림정본관문(咸昌士林呈本官文)이 실려 있다. 계속해서 도내 안동, 함창, 상주, 용궁, 문경, 예천, 성주에 거주하는 40명의 유생이 박한갑(朴限甲), 박매화(朴梅花), 박일원(朴一元)의 투장행위를 통탄하면서 굴장을 곧바로 시켜줄것을 청하는 내용인 도내유생전순상문(道內儒生呈巡相文)이 보이고, 동일한 지역의 108명의 유생이 다시 위와 내용이 같은 도내유생정본관장(道內儒生呈本官狀)이 있다. 유증(遺贈)으로는 곽이정(郭以禎), 홍여하(洪汝河) 등의 유증시문(遺贈詩文)8편이 들어 있다. 추감제편(追感諸篇)에는 채헌징(蔡獻徵)이 지은 글 두 편이 실려 있다. <사회 문화사적 의의> 이 책은 수묵재 박성신 개인에 대한 기록을 수록하고 있다는 점뿐만 아니라 입암산송시사적에서 보이는 상한에 대한 유생들의 인식과 산송의 과정에서
기록의 바탕
출처와 이용 안내
2016년 원본에 포함된 외부 링크로, 현재는 열리지 않거나 내용이 달라졌을 수 있습니다.
- 자료 기준
- 2016-08-31
- 공공데이터포털 페이지 수정
- 2025-08-13
설명과 보유처명은 공개 원본의 표기를 따릅니다. 자료 및 이미지의 이용 조건, 복제·열람 신청은 해당 기관·보유처에서 확인해 주세요.
원본 RDF 식별자 보기
http://lod.culture.go.kr/resource/6062619
주제를 따라 이어 읽기
다른 자료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요
자료의 쓰임과 형태를 비교하며 서로 다른 보유처의 기록을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