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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안경(眼鏡)은 눈에 부착하여 사물을 잘 보이도록 도와주고, 바람 먼지 등의 환경으로부터 눈을 보호하는 광학(光學)기구이다. 시대·제작시기: 근조선. 원본 보유·제공처: 덕성여자대학교 박물관.
보유·제공처덕성여자대학교 박물관
원본의 내용을 읽다
안경(眼鏡)은 눈에 부착하여 사물을 잘 보이도록 도와주고, 바람 먼지 등의 환경으로부터 눈을 보호하는 광학(光學)기구이다. 우리말로 풀이하면 `눈거울`이라는 뜻으로 거울의 원리에서 안경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애체, 애희(愛希), 왜납 등의 명칭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안경이 처음 사용되었던 시기는 조선시대로, `임진왜란 때 명나라의 심유경(沈惟敬)과 일본인 승려였던 현소(玄蘇)가 나이가 많음에도 안경을 낀 덕분에 글을 잘 읽어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고 하고 선조가 이를 중신들에게 하사하였다` 라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남아 있는 것으로 미루어, 적어도 임진왜란(壬辰倭亂)을 전후한 시기에 이미 전래되었으리라고 짐작된다. 또한, 『정조실록(正祖實錄)』에 `정조(正祖)가 눈이 나빠 안경을 끼었다 하고, 우리 나라에 안경이 들어온 것은 그로부터 200년 전이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임진왜란 중에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예법상의 문제로 안경을 연장자 앞에서 쓸 수 없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일반인에게 보급되지 못하였다. 개화기에는 안경을 끼거나 혹은 저고리 깃에 달고 다니는 기생들을 종종 볼 수 있었는데, 이는 눈이 나빠서가 아니라 엘리트 약방기생 출신임을 과시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초기 안경알은 수정을 깎아 만들었고 테는 뿔(角), 뼈(骨) 또는 쇠붙이로 만들었는데 테의 굵기는 점차 가늘어졌다. 안경다리는 실이나 천으로 대체하였으나, 나중에는 접을 수 있게 된 다리를 달게 되었고, 개화기 이후에는 둥근 수정알에 거북 등딱지 등으로 만든 테로 두르고 접을 수 있는 안경 다리를 단 개화경(開化鏡)이 일반에 보편화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유물은 원형의 안경알에 대모(玳瑁)를 재질로 하여 테를 만들었으며, 백동제(白銅製) 안경다리를 한번 더 접을 수 있게 만든 안경이다. 대모(玳瑁)는 거북 등딱지의 작은 조각을 고온으로 가열한 후, 청수(淸水)로 조각들을 서로 이어 갑판(甲板)으로 만들어 사용하는 것으로 신라 시대 이래로 장신구에 많이 쓰인 재료중의 하나이다. 조선시대에는 관대 장식이나 갓, 끈, 관자, 빗, 비녀 등의 재료로 사용하였다.
@ko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찬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14, 정신문화연구원, 1991.
담인복식미술관 편저, 『이화여자대학교 담인복식미술관 개관 도록』,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99.
금복현, 『옛 안경과 안경집(빛깔있는 책들 169)』, 대원사, 2003.
기록의 바탕
출처와 이용 안내
2016년 원본에 포함된 외부 링크로, 현재는 열리지 않거나 내용이 달라졌을 수 있습니다.
- 자료 기준
- 2016-08-31
- 공공데이터포털 페이지 수정
- 2025-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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